[코칭inBook] 밀란쿤데라의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by zipang posted Apr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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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에게 바치는 체코작가 쿤데라의 오마주 !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트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것은 무엇일까?'

쿤데라의 자문처럼 니체의 영원회귀를 긍정하는데까지 나만의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전까지 '이십대 혹은 삼십대로 되돌아가고 가고 싶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다시는 이 삶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반복했었다.
그만큼 고달프던 이십대*삼십대에 내 모든에너지를 다 쏟아부었고
그 삶을 다시 반복할 엄두조차 낼수 없다는것이 내 무의식속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이 삶이 똑같이 반복된다면? 내 삶에 있었던 크고 작은 사건조차 그대로..
한번도 아니고 영원히 반복된다면? 그건 지옥이 아닐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한일처럼 여겨졌다.
다른건 몰라도 그건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운명이라 여겨졌다.

그런데 니체처럼 자신의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긍정할수 있다면 어떨까?
내게 주어졌던 삶의 모든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관점을 조금 달리해서 생각해본다.

'지금 이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한 반복된다고 해도
나는 지금 하고있는 일을 선택하고 지금처럼 행할것인가?'

작은행동 하나 하나에 가해지는 그 무거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그 모든것을 긍정하는 순간
그 형용할수도 없던 무한대의 무거움은 가벼운 유희로 전환된다.

다시 살게된다 해도 나는 지금의 부모님의 딸로 태어날것이고
지금의 사랑스런 남동생을 갖게 될것이며
세상에 둘도 없는 삶의반쪽, 남편을 만날것이며..
내가 선택해왔던 크고 작은 그 모든 시행착오를 다시 겪을것이다.
그 모든 과정에서 지금의 내가 탄생되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것! 거기서부터 니체의 말이 효력을 갖는다.

"만약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그래도 나는 지금 하는 이 일을 계속하게 될까?

그 답이 '아니오'임을 알았을 때 나는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다."
 스티븐 잡스의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도 
영원회귀의 또 다른 표현일것이다.


한편 체코작가 쿤데라는 참*존*가벼움에서 이렇게 해석한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번만 있는 것이며 한번뿐인것은 전혀 없었던것과 같다.'
리허설없는 연극이라 표현되는 인생!
그렇다면 인생은 한번도 제대로 올릴수 없는 연극이나 다름없다.
그림자 같은 인생이니 그 삶은 전혀 없는것이나 같다.
역설적이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해석이다.
'영원성'과 '무'는 같다.

쿤데라는 매력적인 해석 뒤에 자신만의 해답을 내놓는다.
'영원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우리의 삶은 모든 즐거운 가벼움 속에서 그것에 맞설 수 있어.
그렇지만 진정 무거움은 비참하고, 가벼움은 즐거운 것일까?'

 
누군가에게 무겁게 느껴지는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벼움이 될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가볍게 느껴지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거움이 될수도 있다.
때로는 무거움으로, 혹은 가벼움으로 
삶에 다가오는 수많은 운명들을 긍정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모르파티 Amor Fati 니체의 운명애는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강렬한 메세지이다.

쿤데라의 소설은 그 무엇도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가벼움과
영원회귀()의 무거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대적으로 위태로웠던 1968년의 프라하.
가벼움을 지향하는 외과의사 토마스는
일부러 모든 무거움을 떨쳐버리고 어떤 사상의 딱지도 멀리한다.
토마스와 에로틱한 우정을 이어가는 사비나는 가벼움의 상징이며 자유로운 예술가이다.
토마스를 운명의 사랑이라 믿는 테레자는 무거움의 상징이다.
그녀에게 토마시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토마스에게 테레자는 외과 과장의 좌골 신경통에서 시작된
여섯우연의 소산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녀와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 한다.

유능한 외과의사에서 도시외곽병원의 의사로, 유리창을 닦는 노동자로,
시골의 트럭운전사로 끊임없이 추락하는 삶을 살아가는 토마스에게 테레자가 말한다.

"토마시 ! 당신 인생에서 내가 모든 악의 근원이야. 당신이 여기까지 온것은 나때문이야.
더이상 내려갈곳도 없을 정도로 밑바닥까지 당신을 끌어내린것이 바로 나야."
"테레자,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당신은 모르겠어?"
" 당신의 임무는 수술하는거야."
"임무라니, 테레사 그건다 헛소리야 내게 임무란 없어. 누구에게도 임무란 없어.
임무도 없고 자유롭다는것을 깨닫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데..."

토마시의 말이 오랜시간 여운을 남긴다.
 수많은 삶의 미션을 담당하느라 정작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현대의 호모사피엔스들에게
조금은 홀가분하게, 조금은 가볍게 살아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것 같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은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테레자의 감정을 통해 작가는 삶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것 같다.
니체의 말처럼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해도,
아니, 쿤데라의 해석처럼  삶이 단 한번뿐이라고 해도
여전히 삶은 우리에게 무겁게 다가온다.
이 무거운 비극과 마주할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삶을 긍정하는일 뿐이다.

'무엇이 가장 무거운 것인가?
내가 그것을 등에 짐으로써 나의 강인함을 확인하고 기뻐할것이다'

당당하게 외치던 니체처럼
삶에서 무거운것이 찾아올때마다
자신의 강인함을 확인할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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