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코칭inLife]비트겐슈타인~그들에게 전해주시오 나는 멋진 삶을 살았다고

by zipang posted Aug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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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진심으로 행복하지 않다면 나의 모든 재능이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만일 내가 가장 중요한 것을 해결할수 없다면, 철학적 문제를 푸는것이 내게 무슨 도움이란 말인가?
비트겐슈타인의 심연속 절규처럼 우리 인생을 스스로 행복하게 만들수 없다면
우리가 가진 모든것들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일까?
삶의 의미를 깨닫고 철학의 근본문제를 해결했다고 선언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살 충동에 시달렸던 비트겐슈타인,
그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그 문제가 사라지는 방식으로 사는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양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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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 Wittgenstein)은
1889년 4월 2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비트겐슈타인의 집안은 매우 특별했다.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의 카네기”라고 알려질 만큼 오스트리아 철강 산업의 대부호였다. 
아버지 칼 비트겐슈타인은 유태인의 후손이지만 부친을 따라 개신교를 믿었으며,
탁월한 경제 평론가이자 음악 애호가였다.
어머니 레폴딘 칼무스는 가톨릭 신자였고 음악을 남달리 사랑했으며
음악적 재능도 매우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부모는 음악을 비롯한 예술을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비트겐슈타인의 어린 시절 온 집안에는 요하네스 브람스, 구스타프 말러, 아르놀트 쇤베르크,

요제프 요아힘, 파블로 카잘스, 부르노 발터 등 당시 음악계의 최고 유명 인사들이 드나들었고
집안의 아이들은 모두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맏형 한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업가가 되는 대신 음악을 하길 원하다
엄격한 아버지와 충돌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자살로 비극적 삶을 마감했다.

2년 후 둘째 형 쿠르트가 자살한다. 그리고 1차 대전 중 셋째 형 루돌프가 자살한다.
루트비히는 낙원에서 쫓겨나듯, 행복과 환희가 사라진 이러한 실존적 상황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가 죽음과 삶, 자살, 그리고 세계와 신에 대해서 수많은 실존적인 물음을 던졌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913년, 비트겐슈타인은 유럽의 변두리 노르웨이로 떠났다.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에 오두막을 짓고 은둔하며 철학적인 고민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듬해인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그는 주저 없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대에 자원입대했다.

늘 자살충동에 시달렸던 그는 죽음에 직접 직면해 보기로 했던것이다.
특유의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가장 먼저 위험한 임무를 맡았고 침착하고 용감하게 행동했다.
그래서 여러 번 훈장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1918년 8월 그는 이탈리아 군의 포로가 되어 1년 동안 포로수용소에 수감된다. 
그가 포로로 수감되었을 때 그의 배낭에는
전쟁 중에 틈틈이 계속 적어놓았던 『논리철학논고』의 원고가 들어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비트겐슈타인의 실존적 고뇌와 철학적 문제는
삶과 죽음이 넘나드는 참혹한 전쟁의 공포와 절망 속에서 구체화되고 해결되었던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원고를 포로수용소에서 최종적으로 완성한다.
이 후 1921년에 러셀의 주선을 받아 『논고』는 출판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이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어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상속받은 막대한 유산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 유산을 릴케, 핵커와 같은 가난한 문인들을 위한 기금으로,
또 형제자매들에게 모두 나누어주었다.
그 이후로 그는 극도로 단순하고 검약한 생활을 하였다.
그의 방에는 침대, 책상, 의자 등 기본적인 몇 개의 가구만 있었다고 한다.


재벌 2세의 자리를 던져버리고 평생 자신에게 맞는 삶의 형식을 찾아해맸던 그는 공학에서 철학으로,
전쟁터로, 초등학교 교사로, 건축가로, 수도원으로, 교수로, 노동자로,
은둔자로 전전했다. 심지어 죽기 2년전에도 다른 삶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었다고 한다.
다양하게 삶의 형태을 바꾸어가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던 철학자 비트겐 슈타인
그의 마지막 유언은 매우 의미심장했다. '그들에게 멋진 삶을 살았다고 전해주시오.'

평생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방향을 바꾸고, 삶을 탐구했던 철학자.
그의 삶을 엿보며 비트겐 슈타인이야 말로 셀프코칭의 롤모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삶의 문제들을 해결하려 인생전체를 바친 남자.
인생은 철학에 앞선다는 결론을 내리고 삶을 충만하게 살아간 남자.
비트겐 슈타인처럼 원하는 삶속으로 언제든 뛰어 들수 있는 용기와 힘은 내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