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코칭]꿈꾸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건 용기였다..

by zipang posted Oct 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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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간 준비해온 호주 이민...

수많은 시행착오과 몇번의 좌절위기를 넘기고,

우여곡절끝에 마흔이 되던해 가을, 호주땅을 밟게 되었다..

정신없이 호주 생활에 적응하던 몇개월동안 우린 누구보다 빠르게 호주 생활에 익숙해져갔다.

낯선 생활에 익숙해져가던 어느날 난 이제 막 꿈의 한발자국 다가가려던 참이었다.

신발끈 단단히 매고 총소리만 기다리고 있던 내게 남편은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호주에서 더이상 살기 힘들것 같다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게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기다려온 삶인데,

시작도 해보기전에 모든것이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지금 이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것일까?

아무리 답을 구하려 해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남편의 우울감이 남모르게 커가고 있었던 시간,

그또한 수많은 시간을 고민하다 내게 이야기를 꺼낸것일텐데....

밤새 고민끝에 나는 소심한 결론을 내렸다,

남편에게 한달만 시간을 달라고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달동안 원없이 호주를 만끽하고 충만히 느끼다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이었다.

한달동안 마치 재벌2세가 된 듯 가고 싶은곳, 먹고 싶은것, 맘껏 누리며

충격받은 내영혼을 달래면 한국으로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근처 아웃백에서 치킨그릴샐러드와 피쉬앤칩스를 먹으며

남편과 나는 진지하게 한번 행복해보자했다.

호주를 떠나도 후회없을 인생 최고의 한달을 만들고 미련없이 호주땅을 떠나자.

호주를 맘껏 즐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고 싶었던 곳을 실컷 여행하고 먹고 싶었던것 실컷 먹고 ..

그 다음엔...

푹 쉬고...

한달동안 행복을 위해 할수 있는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일단 떠나자 어디로든....

첫번째 여행지는 바이런베이였다.

골드코스트에서 한시간정도 차로 달리면 호주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그림같은 마을 바이런베이가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변과 항상 일정하게 부서지는 파도때문에 오랫동안 써퍼들의 인기 여행지기도 한 바이런베이는

우리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곳이다.

점심시간에 출발해서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던 레스토랑에서

남편은 핏기없는 하얀 얼굴로 도저히 못견디겠다며 한국행 비행기를 끊어달라고 했다.

나는 두말없이 항공편을 알아보았고 우린 그다음날 한국으로 돌아왔다.

10시간이면 돌아갈수 있는 한국! 아침비행기를 타니 저녁에 한국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호주이민 생활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와 한의원, 병원을 돌아다니며 남편의 상태가 생각보다 더 심각했음을 알게 되었다.

맥박이 70노인의 맥처럼 뛴다고 했다.

조금 더 늦었다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는 한의사의 말에 무척 놀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다시 몇달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한국생활에 다시 익숙해지면서 나의 몸과 마음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혼자서라도 호주에 들어가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밀려들었다.

이대로 내 삶을 포기할수는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이런 저런 경우의 수를 말하며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호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걱정이 되었는지 엄마도 무작정 따라 나섰다.

남편을 뒤로 하고 엄마와 함께 호주에 와서 제일 먼저 운전면허 도로 주행을 신청하였다.

호주에서는 운전을 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수 없기에 가장 먼저 할수 있는일이 그것뿐이었다.

지하 6층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대만 2주가 걸렸다.

이 작은 일에도 용기가 쉽게 나지 않는 나였다.

그 순간 가장 큰 이슈는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는것이었다.

목표는 공항으로 남편을 마중나갈수 있게 되는것!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젠 엄마를 모시고 근처 쇼핑몰, 공원까지 가게 된 어느날

낯선 호주 생활이 무료하고 슬슬 힘들어지셨는지 엄마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셨다.

남편 올때까지 함께 있겠다던 엄마는 3주만에 그렇게 한국으로 떠나시고

이젠 정말 세상 혼자 된듯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엄마를 공항에 내려주고 작별인사를 할때만해도 담담하게 웃으며 잘 보내드렸는데,

막상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아침에 해놓으신 밥과 국냄새, 깻잎조림냄새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가자! 한국은 언제든 돌아갈수 있다.!'

그것이 내가 호주에서 견딜수 있는 하나의 힘이었다.

돌아가고 싶으면 내일이라도 한국행 비행기를 탈수 있다.

다음날 바로 호주 라이프코칭 아카데미 세미나에 참석하여 정신없이 3일을 보내고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기를 반복하며 내 삶의 패턴을 새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어느덧 3주를 씩씩하게 보내고 4주째가 되던 어느날 참았던 눈물이 다시 터졌다.

혼자 운전하다 차사고가 났었다.

앞범퍼가 모두 내려앉고 내려앉은 범퍼를 질질 끌며 아파트 주차장까지 와서 보험회사에 연락을 하고

사고 차량을 견인보내고 집에만 있다보니 갑자기 우울감이 밀려왔던 모양이다.

그래도 예전같으면 불평불만을 쏟아 놓았을텐데 받아줄 사람이 없어서인지 불평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외롭고 두렵고 쓸쓸했지만 남편에게 내색하지 않아서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라이프코치 자격증을 따지 못하면 뭐 어때? 그냥 돌아가도 아무도 뭐라고 할사람 없어.

나 자신을 달래고 얼르고 해보았다.

그냥 돌아간다 해도 절대 후회하지 말자.

남편이 빨리 돌아오지 않는다고 슬퍼하지도 말며, 의심하지도 말자

나를 외롭게 하고 쓸쓸하게 만드는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그 순간 나는 나에게 미안해졌다.

그렇게 다시 6개월이 지났다.

이젠 혼자서 까페도 식당도 잘 가고,

잘 먹고 잘자고 아침일찍 일어나 운동도 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내가 되어갔다.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남편도 마음을 추스리고 한국에서의 일도 잘 마무리를 하였다.

페이스북을 통해 감사일기를 쓰기시작한지 40일째!

그 작은 감사가 수많은 기적과 더많은 감사할일을 끌어오고 있었다.

매일 아침 남편과의 통화속에서 남편도 나도 많이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혼자 남게 된다는 두려움을 이겨내며 내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을 잘 알수가 없었다. 흐릿한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수많은 노력을 했다.

남편과 결혼 후 처음 오랫동안 떨어져있으면서, 좋고 나쁨의 기준이 아닌, 서로에게 참으로

필요했던 시간임을 깨닫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서로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고, 각자 원하는 삶을 설계하고, 꿈꾸는 삶을 살아갈수 있었던 시간들!

내게 참 많은 도전을 하게 만들어 주었고,

매일 아침 설레임으로 시작할수 있게 만들어주었던 내 마지막 청춘의 사십대의 시작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같은 시간이 되주었다.

 

judysea.JPG

 

남편이 보내준 모자 선물!

모자를 좋아하는 내게 각양 각색의 모자를 삼청동에서 사서 보내주었고~

그 중 하나를 쓰고 남편에게 보여주려고 찍은 사진~

페북이 알려준 사진이 나를 그때로 되돌아가게 만들어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