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코칭]행복과 불행은 서로 함께 커가는 두명의 오누이요 쌍둥이

by zipang posted Jul 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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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나약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였는가?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수 없고, 아무 곳도 갈수 없는 존재

한국에서의 나란 존재는 먹다버린 사과 만도 못한 느낌이었다.

뭍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숲을 벗어난 다람쥐처럼

날개를 잃어버린 새처럼

늘 불안하고, 긴장되고, 잠을 잘수도 먹을 수도 없고,

숨쉬는 것조차 힘든 시간이 계속 되었다.

가슴속 새까만 구멍은 점점 커져 블랙홀이 되어가고 있었다.

몇년간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어쩌다 지쳐 눕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가위에 눌리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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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심연속 고뇌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나를 이리도 고달프게 만드는 것일까?

실체를 알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고뇌는 나를 붙잡고 놔주지도 않고, 수년간 내 살과 피를 가져갔다.

육체는 점점 병들어갔고, 나의 영혼도 더이상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던 그때!

내가 나에게 스스로 던진 질문이 있었다.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1년 밖에 살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할것인가?

아니 3개월 밖에 살수 없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시간을 좁혀 나가며 나를 압박해 보았다.

1년밖에 살지 못한다면, 아니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면,

한국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낯선 나라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한번 해보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고 싶었다.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었고, 내 삶을 이해하고 싶었다.

죽음의 문턱을 상상하며 마음에 그렸던 곳이 내게는 호주였다.

그곳에 가면 새로운 삶을 살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수 있는 세상이 내 앞에 열릴것이라 느껴졌다.

그렇게 목표를 정하고 남편에게 나의 뜻을 전했다.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한것은 미국의 시트콤 프렌즈를 보며 영어라는 언어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1년동안 매일 한편씩 보며 365일을 채우면 필리핀으로 40일간 어학 연수를 떠나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일년후 필리핀으로 연수를 떠났을때,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충만한 행복감이 느껴졌다.

삼시세끼 밥에서 자유로울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생산적인 일들을 만들어 낼수 있는지도 처음 경험했다.

온전히 영어공부만 할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짜여져있었다.

놀며, 공부하며, 명상하며, 24시간 영어공부에만 푹 빠져있을 수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첫날 인터뷰를 시작으로 각자 닉네임을 정했다. 나는 주영이 아닌 주디로 불리워졌고,

주디는 꿈꾸던 나의 모습으로 나를 이끌었다.

내안에 또 다른 내 모습이 있을수 있다는 아주 신비로운 경험의 순간이었다.

주디는 늘 자신감에 넘쳤고, 능동적이며 주도적이었고, 매순간을 아름다운 열정으로 채워나갔다.

맘껏 사랑하고, 솔직했고, 감정에 충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것이 감사했다.

40일간의 멋진 추억을 만들고 한국에 돌아와 SDA 삼육어학원을 등록했다.

레벨테스트 5단계가 나왔고, 남편과 함께 6단계까지 마치고 드디어 호주 이민 준비를 시작했다.

호주 이민을 위해 필요한 아이엘츠 시험 준비를 위해 다시 아이엘츠 전문학원을 끊고,

기적처럼 한달만에 남편과 시험에 합격했다.

마치 온 우주가 우리를 응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호주이민과정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복잡한 이민서류들, 사업비자를 받는 과정을 지나

마지막 신체검사까지 무려 4년을 준비했고, 드디어 4년짜리 호주 비자를 취득했다.

신께서 드디어 나의 소원을 들어주었고, 나는 원하는 세상을 꿈꾸는대로 살기만 하면 되었다.

처음 3개월간은 해외이사를 하고 새로운 보금자리에 정착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누구보다 일찍 적응하였고 새로운 생활에 필요한 안정을 빨리 찾았다.

양어깨에 커다란 날개를 단 듯 막 비상하려는 참이었다.

나의 에너지는 어느때보다 높이 올라와있었고 , 무엇이든 할수 있을것 같은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누구와도 대적할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논리에도 지지 않을 힘이 생겨났다.

그 누구를 만나도 겁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삶의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제동이 걸렸다.

남편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것이었다.

에너지 충만한 나와는 정반대로 에너지가 고갈되어 좀비처럼 되어버렸다.

나는 이제 막 운동화끈을 바짝 동여매고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 꼼짝을 못하겠다고 한다.

나는 이제 막 두날개를 펴고 상공을 날려고 준비중인데,

날개꺽인 모습으로 한국으로 되돌아가자고 한다.

한달 아니 하루도 더 이곳에 머물기가 힘들다고 한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 하는 이곳 호주 골드코스트가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한다.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죽을것 같다고 한다.

나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내가 꿈꿔온 케익에 촛불도 아직 켜지 못했는데....

나는 모든걸 포기하고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잔인한 운명을 탓할 여지도 없이 남편을 따라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에 오자마자 나의 우울감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의 꿈은 이대로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려야 하는것인가?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남편없이 내가 혼자 결정해야했다.

혼자 할수 있을까?

혼자 살수 있을까?

어쩌면 남편과의 관계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대로 여기서 멈출수는 없었다.

나는 한국을 떠나야 한다.

이곳을 떠나 호주에서의 나의 꿈을 펼쳐보고 싶다.

심사숙고한 끝에 나는 혼자서라도 짐을 싸기로 결정했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나는 평생 후회할것이다.

호주행 비행기를 타면서 두려운 마음이 작아졌다.

가장 먼저 한것은 운전을 다시 시작하는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두려워 시도도 해보지 못했던 운전을 호주에서 처음으로 시도를 해보았다.

지하6층 주차장에서 지상밖으로 나오는데까지 3주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매일 좋아하는 장소로 향하였다...

조금씩 조금씩 두려운 마음이 작아졌다.

두번째로 한일은 일찍 일어나는 일이었다.

새벽 네시면 눈이 떠졌다.

그리고 새벽에 일찍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기 시작했다.

새벽두시간은 내게 영감을 주는 시간이 되었다.

코칭공부를 하면서 루이스 해이를 알게되고 토니로빈스를 알게되었다.

그리고 구본형의 고전읽기를 들으며 나 자신에 대한 이해의 성숙도가 깊어졌다,

나를 이해하게 되면서 내 삶을 이해하게 되고,

라이프코칭이 삶에 끼치는 변화에 깊은 관심이 갔다.

자신을 알아가고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에도 스킬이 필요하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작은 행동의 변화가 삶의 방향을 전환시키고 전혀 새로운 삶을 만들어나간다는것을 깨달았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부단히 자신을 극복해야하는 존재이고,

스스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비로서 큰 행복을 느낄수 있다는 니체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하루 하루 나 자신을 극복해 나가며 나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가장 하기 힘들었던 것을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가장 하기 두려웠던 것을 하나씩 대면해 나갔다.

가장 하기 싫었던 것을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대면하자 두려움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 않았고 그리 싫지도 않았다.

그리고 극복해 나가면서 기분좋은 감정과 자존감이 조금씩 키워져 나갔다.

니체는 말했다. '행복은 자기 극복의 과정에 수반되는 기분 좋은 권력감정'이라고!

혼자 힘으로는 처음! 행복감을 만끽했다.

그리고 하나 둘씩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혼술 혼밥 혼침...혼자서도 즐거운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행복은 결코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다.

우리가 끝에 도달해야 하는 종착지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호주에서의 홀로서기는 충분히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삶에서 가장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있었기에 가장 감사한 순간이기도 하다

행복하려면 때때로 무의미에서 기쁨을 느낄줄 알아야 한다